스시용 쌀의 대중화

에도 스타일의 스시는 마타자에몬의 충분한 식초의 공급과 요헤이의 니기리 스시 성공으로 탄생했습니다. 요헤이의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스시 가게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스시에 대한 “식욕을 억제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엄청난 성공을 누렸습니다.
 
1833년경, 큰 기근이 에도를 휩쓸었고 템포 막부(군사 정부)의 개혁에 따라 사치품이 금지되어 스시 상점들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인기 있는 사업체들이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단속에 걸린 것이라면 좋은 것”이라는 말이 스시의 품질을 평가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변화의 바람이 다시 불어 니기리 스시가 더욱 인기 있게 되었고 이러한 인기에 대한 소문이 에도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메이지 시대 초반 (1868), 요헤이가 사업을 시작한지 40년이 지난 후 요헤이의 니기리 스시는 전국적인 규모로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마타자에몬 나카노의 선견지명과 합쳐진  니기리 스시의 “아버지” 요헤이 하나야의 창의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스시 “문화”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우수한 두 사람이 만나 자신들의 재능을 공유한 때로부터, 스시의 역사는 170년 이상 발전해왔습니다. 스시의 맛이 진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스시의 추종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현대판 “스시 붐”의 역사는 바로 미즈칸의 역사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